그냥 쓰는 이야기
반년 넘게 하던 운동을 그만두고 나서는 체력 저하에 시달리는 것이 분명하다. 날이 조금 따뜻해지면 다시 시작해야지. 라는 말만 몇 번째 뱉어낸다. 날 추우니 그렇게 운동하기가 싫다.
서울에 한 번 다녀오면 진이 빠지는 걸까. 버스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허무해 책을 읽으면서도 꼭 돌아오는 길엔 졸음이 쏟아진다. 주말부터 월요일까지 서울에 있다 집에 돌아와서는 떡실신한 채 종일 잠만 잤다. 애초에 두어 시간 자고 올라가 정신없이 돌아다니긴 했지만, 잠만 자는 생활이 꽤 이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. 충전 중이라고 스스로 달래본다. 이번 주말에도 서울에서 만날 인연들에게 충전한 에너지 다 쏟아붓고 와야지. 벌써 설렌다. 저녁에 북클럽 있는데 참여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.
작년 말부터 정신없이 놀고 있다. 나태 지옥 특급열차를 탔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. 내가 뭘 하는지 아는 이들은 최측근들 뿐이니, 공개적으로 드러난 네트워크상에는 그저 바빠서일 거란 추측들이 돌아다닌다. 나태하게 노는 중인데. 나는 이렇게 놀고만 있다. 세상 천성이 게으르다는 걸 또 한 번 실감한다.
그러고 보면 나는 참 쏟아붓는 걸 잘한다. 쉴 땐 침대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. 핸드폰과 이북리더기만 머리맡에 두고 자다 깨서 책 읽고, 잠들다 깨서 또 책 읽는 게 다인 생활. 느즈막히 일어나 밤새 눈을 부릅뜨고 쨍한 모니터를 마주한다. 프리의 삶이 이렇기에 좋은 거겠지만, 열심히 사는 사람들 보면 이런 내가 한심한 거 같기도 하고. 이렇게 몇 날 며칠 몸이 녹진녹진해질 때까지 다 쏟아부어 논다.
그리고는 결국 밀린 것들을 처리하며 끝장 볼 기세로 잠도 마다한다. 그러니 뭔가 막상 시작하면 편두통에 애드빌 하나씩 입에 털어 넣으며 할 일 한다. 그 텀은 아마도 두 달에서 세 달 정도 되는 듯, 한 번씩 나태 지옥 특급열차에 몸을 싣는다. 나는 정말 중간이란 게 없는 사람이구나 싶다. 열정 만수르가 되었다가 한 번씩 뻗어버리는 그런 사람. 그래도 내가 좋다. 가끔 올라오는 한심함에 머리를 젓기는 해도.
오가며 읽던 글에 필력 좋은 글이 껴있었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. 이 사람은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을까, 얼마나 많은 공연을 관람하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까. 짤막한 단편들 여러 개와 장편 하나. 작년에 써둔 내 글을 들춰보니 이런 글로 남들의 감정을 일렁이는, 그런 책을 내는 게 목표라는 말이 어긋나 보였다. 그런데도 뭔가 그냥 쓰고 싶었다. 새벽이라 그랬나, 집중이 떨어져 같은 줄만 반복해 읽던 책을 덮고 컴퓨터를 켰다. 그래서 나는 지금 아무 말이나 쓰는가 보다. 아침에 이불킥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.
나는 참 책 읽기를 싫어하는 학생이었다. 책을 꾸준히 읽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시절 조금 유별난 친구를 만나고부터이다. 어딘지 독특한 구석이 있는, 책만 읽는 친구였다. 누가 봐도 시끌벅적한 나와 그 친구의 조합은 조금 이상했던 거 같다.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"너는 책을 많이 읽는구나." 와 같은 말로 시작된 관계일 거다. 수업은 뒷전이고 몰래 책 읽는 녀석 덕에 내 연에도 없던 책을 나도 즐겁게 읽어 보기로 했다. 그렇게 만난 게 《아르센 뤼팽》 시리즈였다. 이런저런 책을 추천받아 많이 읽었는데 그때는 북노트 같은 걸 쓰지 않았으니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이 없다.
그때부터 조금씩 글을 썼을 것이다. 장르는 지금의 글들과 다르지만. 당시 썼던 내 추리 소설은,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풀기 난해한 수수께끼들로 가득했다. 〈아르센 뤼팽〉의 번역된 프랑스어 어체는 조금 독특했던 기억이 난다. 프랑스어를 번역했기 때문이라기보단 시대상을 반영하는 말투 때문이었다. "~하지 않았소?" 와 같은 이런 말씨가 나는 참 좋았다. 그래서 내 글도 저런 말투로 빼곡했다.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찾아 읽어 봐야겠다. 손발이 오그라들겠지만.
그냥 쓰는 이야기. 더 진득한 이야기는 개인 블로그에 털어놓기로 하고 여기서 마침표. 어느 순간 이 글이 삭제되었다면, 그것은 분명 나중에 이불킥을 했기 때문일 거다. 새벽 갬성이란ㅋㅋ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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